Split
여성 드라마 & 시리즈

Split(2023): 이성애라는 중력을 벗어나, 욕망의 궤도로 진입하는 분열의 미학

고립된 자아를 깨우는 것은 대개 타인의 시선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삶의 궤도가 사실은 타성에 의해 유지되던 관성임을 깨닫는 순간, 세계는 균열하기 시작합니다. 그 균열은 파괴가 아니라, 비로소 진정한 나를 마주하기 위한 해방의 틈새입니다.

프랑스의 저명한 영화 이론가 아이리스 브레이(Iris Brey)는 자신의 첫 연출작 <스플릿(Split)>을 통해, 한 여성이 견고한 이성애 규범의 세계를 떠나 자신의 욕망이 가리키는 유토피아로 이행하는 과정을 지극히 섬세하고도 감각적으로 그려냅니다.


🌿 이 드라마가 특히 깊게 스며드는 순간

  • 세상이 정해준 ‘정상성’이라는 옷이 문득 내 몸에 맞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 사랑하는 파트너와의 안정감보다 이름 모를 누군가와의 긴장감이 더 진실하게 다가올 때
  • 나의 신체적 감각과 욕망을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언어로 정의하고 싶을 때
  • 그래서 끝까지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 작품은 단순한 외도가 아닌, 한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조화하는 과정을 ‘분할 화면(Split Screen)’이라는 독창적 문법으로 증명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 드라마 관람 전 참고

본 작품은 여성의 신체와 욕망을 다루는 데 있어 매우 노골적이고 솔직한 묘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선정성을 위한 전시가 아닌, 관계의 친밀함과 감각의 전이를 표현하기 위한 연출로, 성인 이상의 관람 등급을 권장합니다.


🎬 드라마 정보

  • 제목: 스플릿 (Split, 2023)
  • 감독: 아이리스 브레이 (Iris Brey)
  • 각본: 아이리스 브레이 (Iris Brey)
  • 국가: 프랑스 (France)
  • 장르: 드라마, 멜로/로맨스, 퀴어
  • 러닝타임: 5부작 (에피소드당 약 18~19분)
  • 플랫폼: France.tv Slash
  • 출연: 알마 조도로프스키 (Alma Jodorowsky), 제니 베스 (Jehnny Beth), 랄프 아무수 (Ralph Amoussou)

📖 <Split>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과 정체성의 재구성 [스포 없음]

30세의 스턴트우먼 안나(Anna)는 10년째 함께해온 연인 나탕(Natan)과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아이를 가질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녀의 삶은 평온하고 예측 가능하며, 사회가 규정하는 ‘행복의 표본’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무성영화의 아이콘 ‘뮤지도라’의 전기 영화 촬영장에서 유명 배우 에브(Ève)의 대역을 맡게 되면서, 안나의 내면에는 낯선 진동이 시작됩니다.

에브와의 만남은 안나가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감각의 영역을 깨웁니다. 스턴트우먼으로서 타인의 몸을 대신하며 살아온 안나에게, 에브의 시선은 ‘대역’이 아닌 ‘본체’로서의 안나를 직면하게 만듭니다. 안정적인 이성애 관계와 거부할 수 없는 동성애적 이끌림 사이에서 안나는 극심한 내적 분열을 겪습니다. 작품은 이 혼란을 시각적인 화면 분할 기법으로 표현하며, 안나가 기존의 삶을 뒤로하고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여정을 추적합니다.


🎞️ 화면 분할(Split)로 포착한 안나의 내면적 균열과 해방의 해석

<스플릿>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연출은 단연 화면 분할(Split Screen) 기법입니다. 이는 단순히 두 장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기술적 장치를 넘어, 안나의 심리적 분열을 형상화합니다. 왼쪽 화면에는 나탕과 함께하는 익숙하고 편안한 일상이, 오른쪽 화면에는 에브와 교감하며 깨어나는 낯선 욕망이 배치됩니다.

안나는 스턴트우먼이라는 직업 특성상 늘 누군가의 몸을 흉내 내며 삽니다. 그녀의 정체성은 타인의 외형을 빌려 쓸 때 완성되었으나, 에브와의 관계 안에서는 오직 자신의 감각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감독 아이리스 브레이는 이를 여성 시선(Female Gaze)의 정수로 풀어냅니다.

카메라의 시선은 안나의 몸을 관음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그녀가 느끼는 촉각, 떨림, 그리고 호흡의 변화를 공유합니다. 이 과정에서 안나가 겪는 ‘어지러움(Vertige)’은 추락의 공포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필수적인 이행 단계로 해석됩니다.


🔎 결말의 재해석: ‘다이크 랜드’라는 유토피아로의 단방향 진입

에피소드 5 ‘One way to dyke land’에 이르러, 안나는 마침내 기존의 이성애 중심적 삶에서 ‘탈출(Sortie)’하기로 결심합니다. 이 결말이 놀라운 점은 그 과정에 파괴적인 갈등이나 복수, 질투가 부재한다는 것입니다. 나탕과의 이별은 비극적인 종말이 아니라, 서로의 진실을 존중하는 성숙한 작별로 그려집니다.

안나가 도달한 ‘다이크 랜드(Dyke Land)’는 단순한 성적 지향의 선택을 넘어, 가족의 형태를 재정의하는 유토피아적 공간입니다. 그녀는 사회가 강요한 역할극을 끝내고,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새로운 서사의 주인공이 됩니다. 결말에서 안나가 얻은 것은 에브라는 연인만이 아닙니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권리와, 타인의 대역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 자유를 획득했습니다.

안나의 선택은 과거의 자신을 죽이고 새로운 자아로 부활하는 의지적 단절입니다.


❓ <스플릿> 결말과 여성 서사의 유토피아적 한계에 대한 해석

Q: 갈등과 고통이 생략된 이 결말은 현실성이 부족한 미화가 아닐까요?

전통적인 퀴어 서사에서 커밍아웃은 늘 피와 눈물, 가족과의 단절 같은 처절한 대가를 요구해 왔습니다. <스플릿>이 보여주는 부드러운 이별과 주변의 이해는 분명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미학적 선택입니다. 하지만 이는 감독의 의도적인 연출입니다.

퀴어 서사가 늘 비극과 고통에 천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이성애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얼마나 기쁘고 해방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유토피아적 선언인 셈입니다. 비판받을 수 있는 ‘매끄러움’은 곧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성숙한 사회의 단면을 미리 보여주는 미학적 장치로 작동합니다.


✨ <스플릿> 정체성이라는 감옥을 부수고 나아가는 욕망의 연대

<스플릿>은 사랑의 유효기간이나 형태에 대해 묻지 않습니다. 대신, 한 인간이 얼마나 용기 있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안나의 여정은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서 있는 그곳은 정말 당신이 원해서 선택한 자리인가요, 아니면 떠나지 못해 머물러 있는 자리인가요? 이 드라마는 관계의 종말을 슬퍼하기보다, 새로운 관계가 주는 확장성에 주목합니다.

진정한 정체성의 확립은 타인이 설계한 궤도를 이탈할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 침묵 속에 숨겨진 욕망을 마주할 용기

우리는 종종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진실한 감각을 억압하며 살아갑니다. 안나가 에브의 손을 잡았을 때 느꼈던 그 경이로운 ‘어지러움’은 사실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변화의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익숙한 안정을 위해 나 자신의 목소리를 침묵시킨 적이 있나요? 아니면 그 침묵을 깨고 낯선 유토피아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나요?


📽 Violet Screen 큐레이션: 관계의 경계를 허무는 여성 서사 추천

  • 워킹 맘스 (Workin’ Moms) (넷플릭스): 워킹맘들의 우정과 경쟁 속에서 여성의 욕망과 정체성이 어떻게 충돌하고 화해하는지 냉소적이면서도 따뜻하게 그립니다.
  • 뒷자리의 문제아들 (The Girls at the Back, 2022) (넷플릭스): 친구 중 한 명이 암 진단을 받은 후, 다섯 친구가 함께 떠난 여행에서 벌어지는 연대와 비밀을 다룬 스페인 드라마입니다. 연인 관계를 넘어선 여성들의 다층적인 유대와 욕망을 유쾌하고도 깊이 있게 그려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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